[보도기사] "고아X가난X장애,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증거'가 된" 김진혁 항저우장애인AG 단장 이야기[진심인터뷰-항저우G-200]

김진혁 항저우장애인아시안게임 선수단장이 휠체어테니스 국가대표 에이스 임호원에게 휠체어테니스를 배우고 있다. 

사진제공=대한장애인체육회



사진제공=대한장애인체육회



[스포츠조선] 대한장애인체육회가 지난 2월 김진혁 보배에프앤비 대표이사(43)를 항저우장애인아시안게임 선수단장으로 선임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1년 연기된 '2022 항저우장애인아시안게임'은 10월 22~28일 열린다. 5일, G-200을 앞두고 300여명의 대한민국 선수단을 이끌 김진혁 단장을 경기도 분당 야탑동 집무실에서 마주했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 마치 투사같은 김진혁 단장의 소년처럼 수줍은 미소가 첫 번째 반전. '스포츠조선'이라는 인사에 김 단장이 "저 길음동에서 스포츠조선 배달했었는데"라며 반색했다. 이후 한 시간 반을 훌쩍 넘긴 인터뷰는 잔혹동화, 인간극장 사이를 쉼없이 오가다 결국엔 따뜻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됐다.



김진혁 항저우장애인아시안게임 선수단장이 수영 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 조기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대한장애인체육회



▶잊을 만하면 찾아온 시련, 청년은 결코 무릎 꿇지 않았다


아버지는 해병대 출신, 베트남전 참전용사였다. 어머니는 두 아들을 낳은 직후 자궁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낙담한 아버지마저 술병, 홧병으로 세상을 등졌다.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김 단장은 전남 여수에서 노래방을 하던 이모 손에 자랐다. 희망없이 살아가던 소년은 중3 때 "교복이 멋져보여서" '지역 명문' 여수고 진학을 결심했다. IMF 때 이모가 빚 보증을 잘못 서며, 지독한 생계고에 시달렸지만 수돗물로 주린 배를 채우면서도 꿈을 잃지 않았다. 여수고에서 반 5등 안에 들었던 성적으로 1999년 전남대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공인회계사(CPA)가 돼 시집도 안가고 고생한 이모를 호강시켜주는 걸 다음 목표 삼았다. 하지만 대학교 2학년 되던 스물한 살, 세상이 또다시 무너졌다. '기른 정' 이모마저 말기암으로 세상을 떴다. 사고무친, 이 악문 생존 전쟁이 시작됐다. 


2003년 상경한 후 '하루 13시간' 중국집 배달일을 시작했다. 하루 4시간 새우잠을 자며 월급 185만원을 벌었다. 새벽 3시반부턴 신문을 돌렸다. 2시간에 200부를 돌리면 45만원이 떨어졌다. 월세 빼고 전액을 저축했다. 2년 만에 종잣돈 4000만원이 모였다. 중국 광저우에서 의류도매업을 하다 온라인 시장이 득세하자, 28세, 천직같은 '중국집'으로 돌아왔다. 30세 창업을 목표로 식자재 납품업체에서 현장 상권, 메뉴, 마케팅 전략을 발로 뛰며 공부했다. 지인들이 컨설팅을 요청할 만큼 내공이 쌓였다.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24시간 중국집' 배달 알바도 멈추지 않았다. 꿈을 향해 치열하게 내달리던 스물아홉의 그 겨울, 또다시 운명의 장난이 시작됐다. 


야간 배달 중 불법 유턴하던 음주 차량과 충돌했다. 오른쪽 다리가 굽혀지지 않았다. 살 만하면 고개를 드는 불행, 김 단장은 "'아! 대체 왜!' 악을 내질렀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의사는 다리를 절단해야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경희대병원에서 3번의 대수술 후 10개월을 꼬박 병상에 누워 지냈다. 아내와 아들을 눈앞에 두고 극단적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도 무릎 꿇지 않았다. "휠체어를 타고 바깥 구경을 하게 되고, 목발을 짚게 되니 생각이 달라지더라"고 했다. 사고 4~5개월 후 다시 살 길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라면왕 이철호 이야기', 서진규의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 이지선 교수의 '지선아 사랑해' 등의 책을 읽으면서 그는 결심했다. "고아임에도 불구하고,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반드시 성공하겠다. 나도 희망의 증거가 되겠다."




대한장애인체육회가 15일 경기도 성남 밀리토피아 호텔에서 열린 

대한장애인체육회 제15차 이사회에서김진혁 보배F&B 대표이사를 

항저우장애인아시안게임 대한민국 선수단장으로 임명했다. 

정진완 대한장애인체육회장이 임명장을 수여한 후 김 단장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제공=대한장애인체육회



▶항저우아시안장애인게임 단장을 결심한 이유


2010년 서른살 겨울, 계획대로 창업에 성공했다. "가슴 속 뜨거운 불덩이가 다시 살아났다"고 했다.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서 직원 셋의 동네 중국집을 7000만원에 인수한 김 단장은 1년도 안돼 직원을 17명으로 늘렸고 월 매출도 5000만원에서 1억2000만원으로 급성장했다. 짬뽕 국물 베이스의 해물떡볶이와 볶음밥, 사과 생돈까스와 짜장밥 등 '신박'한 세트메뉴는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2014년 서울 성북구 길음동에 자신의 이름 '보배 진'을 딴 브랜드 '보배반점 1호점'을 열었고, 짬뽕 맛집으로 입소문을 탔다. 코로나 위기도 준비된 이들에겐 기회였다. 2020년 성남시 야탑 본점 오픈을 계기로 2년 만에 전국 100호점을 돌파했고, 현재 전국 140호점까지 문을 열었다. 지점 월 평균 매출은 9000만원, 야탑 본점의 월 매출은 2억5000만원을 웃돈다.


평생 하루 4시간을 자며 돈을 벌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김 단장은 "40대가 되니 가치관이 바뀐다.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내가 1조 클럽에 들어간다 한들 중국에 가면 아무것도 아니다. 자산 100억이 500억이 되면 5배 더 행복해질까? 그렇지 않다. 가치있는 삶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내가 전남대에 합격한 후 친구 아버지가 입학금 100만원을 선뜻 빌려주셨을 때 인생이 따뜻하다고 느꼈다. 젊은 시절 내가 그랬듯,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잘 해보려고 아등바등 애쓰며 노력하는 이들, 조금만 도와주면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싶다"고 했다. 지인 소개로 만난 정진완 대한장애인체육회장이 항저우장애인아시안게임 단장 자리를 제안했을 때 고민 끝에 수락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학창시절 농구, 축구, 탁구, 배드민턴을 즐겼다는 김 단장은 "내가 해도 될 자리인지 망설였지만 이천선수촌에서 장애인들이 운동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벅찼다. 선수들 표정이 하나같이 밝았다. 스포츠가 이런 힘이 있구나. 함께 열심히 해봐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며 웃었다.


보배반점 '입소문' 홍보 효과도 기대된다는 말에 그는 손사래 쳤다. "우리 브랜드 이미지가 좋아지면 당연히 좋겠지만 애초에 그런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같은 장애인이고 의미 있는 일이라 단장을 맡기로 결정한 것이다. 홍보를 하려면 유튜브 광고나 PPL로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바라는 게 하나 있다면 우리 선수들에게 인정받는 단장이 되고 싶다. 사업을 하다 보니 아랫사람이 인정하는 윗사람이 '진짜'다. 항저우장애인아시안게임 때까지 수시로 선수촌을 찾아 선수들과 시간을 보내고 공감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세심하게 살펴 지원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단 한번뿐인 인생, 뽕을 뽑자!' 짬뽕 국물처럼 진한 보배반점의 유쾌한 슬로건도 '불꽃남' 김 단장의 작품이라고 했다.


원문 기사 보기 : https://n.news.naver.com/sports/general/article/076/000399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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