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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기사] 짜장 양파는 3㎝, 짬뽕은 1㎝... 지독한 불운 넘은 이 숫자 [사장의 맛]
동네 1등 중국집 ‘보배반점’ 김진혁 사장 2편
불운 극복하고 맨손으로 시작해 올해 140호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자” #사장의 맛
고아로 자라나, 먹고 살기 위해 중국집에서 배달을 했다. 30살 창업을 목표로 매일 4시간씩 잤다. 낮에는 식자재를 납품하고, 밤에는 배달을 뛰었다. 그리고 29살이던 해 12월, 교통사고로 장애를 얻었다. 병원에서 “다리를 잘라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몸뚱이 하나 밖에 없었는데...모아둔 돈을 아내에게 건네며 “떠나라” 말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고민했다.
보배반점의 사장 김진혁(41)씨의 얘기다. 젊은 나이에 맛본 좌절. 캄캄한 어둠 속에서 그는 스스로 한줄기 빛이 되기로 마음 먹었다. “나는 고아이지만, 가난하지만, 장애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증거가 되고싶다”는 꿈을 품었다.
김씨는 2011년 서울 중랑구에 있는 중국집을 인수해 본격적으로 외식업에 발을 들였다. 이어 2014년 자신의 브랜드 보배반점 1호점을 열었고, 매장을 꾸준히 늘려 2019년 중국집 3개를 운영하는 다점포(多店鋪) 사장이 됐다.
2020년에는 사업 지역을 넓히기 위해 경기 성남시에 보배반점 야탑점을 오픈했다. 그런데 덜컥 코로나가 터졌다. 모임 인원, 영업 시간 제한 등 각종 규제가 생겨 장사에 위기가 찾아왔다. 주변 고깃집, 커피숍 등이 줄줄이 폐업했다. 상가는 하나 둘씩 공실이 생겼다. 하지만 김씨는 위기에서 기회를 봤다. 사람들은 외식 대신 배달을 늘리기 시작했고, 보배반점은 홀 매출이 줄어든 것 이상으로 ‘배달 특수’를 누렸다. 김씨는 여기서 사업성을 봤다.
그 결과, 보배반점은 현재 전국에 140개 매장이 영업 중이다. 전체 지점의 월 평균 매출은 약 9000만원. 최고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경기 야탑점은 월 2억5000만원을 번다. 2020년 초까지 매장 4개에 불과했던 동네 맛집이, 어떻게 전국구 프랜차이즈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짜장 양파는 3cm, 짬뽕 양파는 1cm”...매뉴얼로 잡은 맛
–첫 가게부터 장사가 잘 됐나요?
“첫 가게는 2011년 인수한 서울 중랑구의 중국집이었요. 직원을 3명에서 17명까지 늘리고, 배달 위주로 장사했어요. 월 매출 1억2000만원인 동네 1등 중국집을 만들었죠. 하지만 배달이 많다 보니, 지나치게 사람 의존적이었어요. 확장성이 떨어진 거죠. 그때 사람에 대한 믿음도 많이 깨졌습니다.”
–직원 관리에 애를 먹으셨나 봐요.
“맞습니다. 조용한 날이 없었어요. 배달이 밀려 항의 전화가 오는데, 홀 직원이 음식을 재촉하면 주방 직원은 “네가 와서 해보라”며 다투는 모습이 일상이었죠. 아버지가 아프다며 1000만원을 가불 받고 잠적한 A, 카드값 핑계로 100만원 받고 도망간 B 등 배신도 많이 당했어요. 사업에 실패한 가장, 갓 출소한 전과자 같은 사연 있는 사람도 많았는데, 모두를 내 사람으로 만드는 게 간단치 않더라고요.”
–돌파구를 찾았나요?
“배달 전문점을 정리하고, 서울 성북구에 홀 위주인 ‘보배짬뽕’을 차렸어요. 지금 보배반점의 전신(前身)이죠. 직원들을 눈앞에서 지켜보고, 같은 공간에서 손발을 맞추면 운영이 수월할 줄 알았어요. 그때 맛을 업그레이드 하려는 노력도 많이 했죠. 손님들이 뭘 좋아하는지 관찰하고, 식사가 끝나면 항상 어땠는지 물었어요. 그리곤 육수를 사골로 바꿔 보고, 불맛을 내기 위해 짬뽕을 다양하게 볶아 봤어요. 신메뉴를 개발해 메뉴판만 5번 정도 바꿨는데, 정작 월 매출은 3000만원을 맴돌았습니다.”
–장사가 잘 되는 전환점이 있었나요?
“‘매뉴얼화’가 시작이었어요. 매장 오픈, 접객, 주방 레시피 등 모든 과정을 매뉴얼로 만들었어요. 예를 들어, 메뉴별 양파 굵기를 정했어요. 짜장은 가로·세로 3cm, 짬뽕은 1cm, 탕수육은 0.3cm 굵기의 채 등 세세한 기준을 세웠죠. 장사에 틀이 잡히니, 손님들도 “한결 같이 만족스러운 맛”이라며 좋아하더라고요. 맛 다음으론 ‘오감을 만족시키자’는 목표를 세웠어요. 상호명을 보배반점으로 바꾸고, 짬뽕집의 시그니처와 같은 빨간 간판을 스타벅스 느낌의 초록색으로 바꿨죠. 매장 안에선 중국집 고유의 퀴퀴한 기름 냄새를 지우고, 홀에 있는 TV를 없애고 세련된 음악을 틀었어요.”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자”
–가게는 언제부터 늘리기 시작한 거예요?
“2014년 서울 성북구에 창업한 첫 가게가 자리 잡기까지 10개월 정도 걸렸어요. 다음해 강북구에 2호점을 냈고, 2016년쯤 매장 2개로 연 매출 9억원을 달성했죠. 그때 입소문이 나면서 채널A의 ‘서민갑부’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어요. 이어 성신여대 근처에 3호점을 냈고, 2019년까지는 쭉 매장 3개를 운영했습니다.”
–현재 140개 매장이 있는데, 3년여만에 이렇게나 많이 늘린 건가요?
“맞습니다. 2020년에 경기 성남시에 야탑점을 열고, 프랜차이즈 사업을 키우기 위해 사무실도 얻었어요. 주변에서는 “이런 시국에 왜 사무실까지 얻냐”고 말리는 사람이 많았죠. 하지만 저는 늘어나는 폐업과 공실이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배달 주문이 많고, 1~2명씩 밥 먹으러 오는 중국집은 ‘불황 속 호황’이 올 거라고 예상했거든요. 게다가 공실이 늘어나면 권리금 없이 목 좋은 자리를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현재 직영점은 몇 개인가요?
“10개입니다. 모두 저와 최소 1년을 함께 보낸 직원들이 점장을 하고 있어요. 장사를 배우겠다고 찾아와, 주방과 홀을 다 경험해보고,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인 친구들이죠. 점장은 각 매장의 지분을 갖고 있습니다. 월급 외에 매출에 대한 사업 소득도 얻어 가는 거죠. 그래서 늘 점장들에게 “이 가게 사장은 너야. 너만 믿는다”는 말을 해요.”
–가맹점주는 직원 만큼 관리가 안 될 거 같은데.
“보배반점의 특징은 ‘누구나 쉽고 빠르게’ 음식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특별한 요리 실력이 없어도, 본사 매뉴얼대로만 음식을 만들면 똑같은 맛을 낼 수 있어요. 손님 응대, 매장 운영 등도 모두 매뉴얼화 돼 있으니, 그대로 하면 돼요. 게다가 본사 차원에서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꾸준히 사후 관리를 해요. 140개 지점의 전체 월 평균 매출이 9000만원이 넘는 것도 이 때문이죠.”
–중국집 배달부로 시작해 여기까지 왔는데, 앞으로의 목표는 뭔가요?
“당장은 지점 200개가 목표입니다. 직원들에게 항상 “보배반점 200호점을 기점으로 하고 싶은 걸 해보자”고 말해요. 저희 회사에는 헌팅포차, 프랜차이즈 카페, 마케팅 회사 등 다양한 이력을 가진 직원들이 있어요. 젊고 유능한 만큼 하고 싶은 일은 더 많을 거예요. 회사 사장으로서, 저에게 가장 큰 자산은 꿈이 있는 직원들입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도 있잖아요. 저는 앞으로 직원들과 새로운 아이템을 기획해 더 멀리 나갈 생각입니다.”
–본인의 꿈 ‘희망의 증거’에 얼마나 가까워진 거 같으세요?
“아직 멀었죠. 의지할 곳 없는 고아, 무력감에 휩싸인 장애인. 희망의 메시지가 필요한 사람은 너무 많습니다. 지난달, 코로나로 1년 연기된 2022 항저우장애인아시안게임의 선수 단장으로 임명됐습니다. 300여 명의 선수가 참가하는데, 지금은 이들에게 힘이 돼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저 한 사람으로는 부족할 수 있지만, 이 300명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희망의 증거가 될 수 있으니까요.”